娇色导航

1990년대만 해도 독일에서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지도에서 한국의 위치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던 시절, 한 독일 소년은 태권도를 통해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태권도 사범님을 따라 14살에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30년이 흐른 지금 전혀 다른 이유로 다시 이 땅을 밟았다. 메르세데스-벤츠 한국 지사의 최고정보책임자(CIO)로서다.

서울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娇色导航파레스 카말은 “어릴 적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있어 늘 관심을 갖고 있던 가운데, 한국 지사 娇色导航역할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고, 좋은 기회가 닿아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지사 CIO로 부임한 지 4년. 그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현장에서, 문화와 시스템의 간극을 넘나들며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해결해보자’는 마음으로 걸어온 20년

카말은 말 그대로, 뼛속까지 ‘벤츠맨’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다. 국제 비즈니스를 전공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메르세데스-벤츠에 입사해, 어느덧 2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는 전통적인 IT 부서보다는 세일즈, 리테일 조직 등 다양한 현업 부서에서 IT 업무를 맡아왔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실질적인 비즈니스 이해도를 갖춘 리더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지역적으로도 그는 본사에서 약 10년을 근무한 후, 러시아, 체코, 한국 등 해외 지사에서 11년간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카말은 “다양한 팀과 국가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각 비즈니스의 도메인 지식과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깊이 쌓을 수 있었고, 이런 부분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됐다”라며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늘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라고 밝혔다.

메르세데스-벤츠에 대한 카말의 각별한 애정은 그의 고향과 관련이 있다. 그의 고향 독일 포르츠하임은 슈투트가르트에서 40km 떨어진 지역으로, 그곳의 많은 기업이 자동차 관련 업체다. 슈투트가르트 자체가 포르쉐와 메르세데스-벤츠 본사가 위치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다보니 수많은 협력사와 부품 공급업체들이 몰려 있는 것이다. 카말을 비롯한 근처 주민들은 어릴 때부터 메르세데스-벤츠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지금도 그 애정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인 추억뿐만이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만의 기업 문화 자체도 그를 머물게 만들었다. ‘가장 매력적인 자동차를 제공한다(the most desirable cars)’라는 브랜드 철학 아래, 메르세데스-벤츠는 안전벨트, 에어백, ABS 등 혁신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며 자동차 산업의 진화를 이끌어왔다. 이 같은 혁신 DNA는 IT 분야에서도 이어졌는데, 대표적으로 2018년에는 AI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BUX를 선보였고, 현재는 차세대 운영체제 MB.OS를 개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에서 레벨 3 자율주행 인증을 최초로 획득했다.

IT 분야 특유의 매력도, 카말이 오랜 경력을 이어온 원동력이었다. 그에게 IT의 진정한 매력은 문제 해결의 즐거움에 있다. 프로필 소개 문구에는 한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긴다(Have fun while solving problems)’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카말의 정의에 따르면, IT 부서는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갈 때는 눈에 띄지 않지만, 단 5분만 작동하지 않아도 비상이 걸리는 곳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도전 과제가 생길 때마다 위축되는 사람은 IT 부서에 적응하기 어렵다. 반면, ‘해결해보자’’는 열려 있는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은 IT를 자신의 천직으로 느끼며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카말은 “IT 업계의 장점은 투명하다는 것이다. 결국 IT 부서의 모든 과제는 그 기술이 ‘작동하느냐 작동하지 않느냐’로 귀결되는데, 이 과정 속에 문제는 늘 발생한다”라며 “100% 완벽한 예방은 불가능하지만, 동일한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장애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는지 성찰하고, 그 경험에서 배우는 자세를 갖추면 IT 부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꽤 만족도가 높은 일터가 된다”라고 표현했다.

중앙화와 현지화의 조화

메르세데스-벤츠 글로벌 IT 조직은 1만 명이 넘는 전문가로 구성되어 인프라, 클라우드 서비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그리고 최근에는 AI까지 다양한 기술을 폭넓게 주도하고 있다. 이때 본사에 그룹 차원에서 CIO와 별개로 시장별로 CIO가 존재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글로벌 판매량 5위 시장인 한국에서는 카말이 4년째 CIO를 맡아 한국 IT 팀과 필리핀 공유서비스센터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

카말은 자신의 주요 업무가 한국 시장의 특수성과 글로벌 메르세데스-벤츠의 IT 전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디지털 경험에 대한 기대치가 유난히 높은 시장으로, 글로벌 서비스 역시 현지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되, 동시에 로컬 솔루션의 적용 범위는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하는 식이다.  

동시에 CIO로서 그는 한 부서의 변화가 조직 전체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칠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A 부서에서 “이 기능을 개선하면 실적이 향상될 것 같다” 라고 제안하더라도, 곧바로 수용하기보다는 경영관리 등 다른 부서의 프로세스에 미칠 영향을 먼저 고려해 개발 과제를 조율한다. 이러한 조율 능력이야말로 IT 매니저와 차별화되는 CIO의 핵심 역량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카말의 업무는 세 갈래로 나뉜다. 그중 첫 번째는 IT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디지털 성숙도가 높은 한국 시장에서는 사고나 시스템 장애가 발생했을 때, 더욱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애플리케이션과 인프라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2021년에는 글로벌 차원에서 시스템의 확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인프라를 인포시스(Infosys)에 아웃소싱했으며, 다임러 트럭 사업부의 플랫폼 분리 작업도 진행했다.

두번째 업무는 단순한 운영 지원을 넘어선 혁신 기술을 도입이다. 카말이 최근 2년 넘게 이 영역에서투자한 부분은 로우코드 솔루션과 중앙집중형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이를 통해 한국 조직 간은 물론 글로벌 전반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AI 기반을 다지는 데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Direct Sales) 방식에 대비한 신규 기술 시스템 구축도 진행 중이다. 카말은 “IT 관점에서 보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고객 데이터 관리, 계약, 가격 책정, 청구서 발행 등 대부분의 업무가 딜러사의 시스템에서 처리됐지만, 앞으로는 이 전 과정을 메르세데스-벤츠의 시스템이 직접 담당하게 된다”라며 “단순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내부 부서 간은 물론 딜러사와의 협업 모델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관점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세번째 업무는 보안 및 IT 컴플라이언스 강화다. 시스템을 보호하고, 데이터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 프레임워크 구축 같은 일이다. 카말에 따르면 각국의 규정에 맞춰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은 각 시장 CIO의 핵심 과제다.

카말은 “보안은 현재 자동차 업계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라며 “특히 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의 데이터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과 시스템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한국 娇色导航팀에는 인프라 담당자, 보안 담당자, 로우 코드 개발자 등 다양한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라벨 시스템부터 심리적 안전 책임자까지, 카말만의 팀 관리법

사람을 이끄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과 일할 때조차 어려운데,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구성원들과 협업할 때는 그 복잡성이 한층 더 커진다. 카말은 한국인 외에도 여러 국적의 팀원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 프로젝트와 팀의 특성에 따라 리더십 방식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을 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입 직원에게는 구체적인 단계별 지침을 제공하고, 숙련된 팀 리더에게는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접근을 달리한다.

카말은 “하나의 리더십 스타일만으로는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상황과 구성원의 성숙도에 따라 적절한 리더십을 선택해야 하며, 이를 통해 팀의 역량과 성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지사에 부임한 이후 카말은 일상적인 업무는 물론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내부 팀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책임감과 주도성을 갖도록 독려해왔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 관리 도구를 활용해, 색상 라벨 시스템 기반의 업무 관리 체계도 직접 구축했다.

해당 체계에서는 각 팀원의 프로젝트 과제와 함께, 진행 상태를 나타내는 색상 라벨도 관리 도구에 입력된다. 녹색은 ‘정상 진행 중’, 노란색은 ‘이슈가 있어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 있음’, 빨간색은 ‘어려움이 있어 카말의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현재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IT 팀에서는 약 90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 중인데, 이 색상 라벨 시스템 덕분에 팀원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독립적으로 관리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할 때 명확히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카말은 리더로서 모든 프로젝트를 일일이 관리하지 않고도,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표시된 프로젝트에 집중하여 필요한 시점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카말이 주력하고 있는 또 다른 영역은 피드백 문화 개선이다. 한국 지사에 부임한 초기, 그가 낯설게 느낀 부분은 회의 문화였다. 회의에서 팀원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대부분 “모두 좋습니다”라는 반응만 돌아오고, 회의가 끝난 뒤에야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의견을 전하곤 했다. 독일의 회의 문화에서 잘 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카말은 “한국에서는 회의가 대부분 상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그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직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부분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어느 한쪽의 방식을 강요하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율하며 각자에게 최선의 방식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독일과 한국의 피드백 문화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카말이 선택한 해결책은 팀 내 ‘심리적 안전 책임자’ 두 명을 지정한 것이다. 이들은 아직 피드백 문화가 어색하거나 상사에게 직접 의견을 전하기 어려운 직원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며, 소통의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매월 ‘샤이닝 스타’라고 명명한 프로그램을 통해 팀원들 간 긍정적인 피드백을 서면으로 받고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익명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평생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을 타고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일해 온 그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차를 경험하고 경쟁사와의 차이점을 분석하며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즐긴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가족 여행에서 한국 차를 렌트해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맡은 역할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카말은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다른 국가에서도 자동화와 AI 분야에 더 깊이 관여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jihyun.lee@foundryco.com